소설(小說) : 경력사원_2
박팀장의 대답은 너무나 궁색했다. 죽을까봐 이직했다는 말은 앞뒤가 안 맞다. 일을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회사, 그에 맞는 엄청난 연봉과 대우를 해주는 것을 알면서도 S전자에 입사했을텐데 죽을까봐 이직했다니 이상하다. 변명인거 같다. 우리회사도 S전자 정도는 아니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도 없이 일 할때가 한 두번이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죽을까봐’라는 말 속에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다른 말 못할 사연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추궁해도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걸 안 성호과장은 커피까지 풀코스로 쏘겠다고 하면서 박팀장님을 회사 근처 폴바셋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마침 박팀장이 좋아하는 곳으로 골랐다. 박팀장은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는 커피 애호가 이다. 그러고보니 안 가진게 없는 완벽한 사람이다.
박팀장이 즐겨먹는 룽고 2잔을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고 있다가 진동벨 소리를 듣자마자 부리나케 커피를 가져다 박팀장 앞에 대령 시켰다. 평소에 성호과장 모습에 맞지는 않았지만, 최대한의 서비스로 진실을 듣고 말겠다는 간절함 있는 행동이다. 그런 작전에도 불구하고 박팀장님은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지 않았고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커피만 마시고 끝나버렸다.
어둑해진 하늘 밑으로 높은 건물들이 번쩍이는 엠블럼을 뽐내며 있다. 이제 그만 퇴근해야 할 만큼 사무실은 빈자리가 늘어나 쓸쓸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다른 부서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중에 익숙한 자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늘 업무에 찌들어 있는 희진 대리이다. 그녀는 작년에 K산업에서 이직했다. 밝은 갈색 염색을 하고 웨이브를 준 머리를 한 예쁜 외모와 단정한 옷차림에 긴치마를 즐겨 입는다. 집안은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좋다고 한다.
"과장님 퇴근 안하세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멍 때리고 계세요?"
"아..아닙_니다"
그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을 들키기라도 한 것 같아 말을 더듬거렸다. 내일 마케팅 보고서 때문에 늦는다고 말을 할려다가 멈추었다.
"희진 대리님은 매일 늦게 가세요?"
"제가 매일 늦게 가는 거 어떻게 아세요?"
"스토커세요?"
"아...죄송해요.. 저도 늦게 갈 때마다 계신 것 같아서요."
"히히..아니에요, 장난이에요"
희진대리는 장난을 잘치는 스타일인 걸 알면서도 매번 당한다. 성호과장은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과장님? 더 일하다가 가실 꺼 아니면, 같이 퇴근해요."
"아?? 저요?"
"예! 좋아요! 저도 방금 정리 할려던 참이었어요!"
우연히 퇴근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퇴근길이 다른 날과 다르게 설레였다. 그냥 평범한 직장 동료와 퇴근하는 건데 말이다. 지하철까지 가는 길이 길지는 않지만, 가는 내내 회사 업무 얘기로 쉬지 않는 희진대리다.
"과장님~? 혹시 기획팀 박팀장님하고 친하세요?"
"예.. 예전에 TF를 같이해서 친하게 되었어요. 친하기 보다는 좋은 팀장님이죠."
"다름이 아니라 S전자에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뭐하셨는지 궁금해서요"
"아.. 그건 얘기가 긴데~다음에 커피 사주시면 알려드릴께요.”
“완벽하시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이세요.”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기대가 되요.”
"내일 커피타임 예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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