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 : 경력사원_3
성호과장은 희진대리와 자연스럽게 커피 약속을 하게 되었다. 얘기하던 중에 벌써 지하철역 입구로 와버리게 되었다. 희진대리는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후다닥 지하철역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한참 쳐다본 후 쓸쓸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속으로 같이 청계천을 산책 해줬으면 했지만,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입속에 맴돌기만 했다. 사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오랫동안 희진씨 자리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회의를 하느라 자리를 비울 때도 빈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한참동안 통화를 하는 걸 들었는데 어느새 뒤에 와서 퇴근하자고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그 다음날 커피 약속은 서로 바쁘다는 핑게로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성호과장은 잊어버렸다기 보다는 굳이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로 몇일 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쳤다. 희진대리가 저번에 커피 한잔하자고 했는데 왜 연락이 없냐고 했다. 그래서 바쁘신거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희진대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길게 들을려면, 커피보다는 저녁이 좋겠다고 했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희진대리는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부랴부랴 책상을 정리하고 뒤따라 나갔다.
장소는 희진대리가 자주 가는 가로수 길의 와인바이다. 분위기도 있고 가격도 저렴해 자주 찾는 곳이라고 한다. 둘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성호과장은 와인을 잘 모르기에 희진대리가 주문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부르고뉴 샤도네이 스파클링 와인 하구요. 올리브 크래커 주세요”
희진대리도 와인은 잘 모르는데, 한달 전 휴일 저녁때 우연히 가로수길에서 박팀장과 만나게되어 그때 박팀장이 시킨 메뉴를 그대로 시켰다고 한다.
“박팀장하고 따로 만나신 적이 있었다구요??”
“아~~~아니에요..그냥 우연히요..우연히..”
그러고보니 이상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희진대리와 박팀장은 한명이 카톡 프로필을 바꾸면 다른 한명도 따라 바꿨다. MZ 세대식의 썸을 타고 있다. 카톡 배경으로 음악이 폴킴의 ‘모든날, 모든 순간(Every day, Every Moment)’로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연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성호과장님 무슨 생각하세요? 크래커 드세요!”
“아..아닙니다. 예 감사합니다.”
박팀장님이 저번에 제 접시에 놔주셨는데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 성호과장에게도 해주는 거라고 한다. 사소하고 평범한 행동이지만, 성호과장을 위한 건지 박팀장 아바타로 생각하는 건지 헷갈린다.
“이제! 어느 정도 배를 채웠으니! 밥값을 하셔야죠? 성호과장니_임!”
“예?? 뭘?”
모른 척 하고 대답을 했다.
“기획팀 박팀장님 얘기해주신다고 했잖아요.”
앞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을 마신 후 박팀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박팀장님은 S전자에서 경력사원으로 왔데요.”
“그것도 연봉이 가장 쎈 반도체 기획부서에 왔다고 합니다. 대단하시죠?”
“그런데 왜?? 이리로 오셨데요?”
“이직한 사유는 ‘보고서 쓰다가 죽을꺼 같아 오셨다고 합니다. 이상하죠?”
“헐!!”
“좀 이상한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쵸? 이상해서 제가 밥과 커피 풀코스로 대접하면서 물어봤는데, 더 이상 얘기를 안 하시더라구요!”
“제가 봐도 웬만한 보고서는 10분 안에 뚝딱 쓰시는 실적이면 탑클레스 인데 말이죠.”
“맞아요! 그러신 거 같아요! 더요! 더요!”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 덕분에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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